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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대한 자기서사 다시쓰기(내러티브, 자아정체성, 회복)

by analog25 2025. 11. 16.

우리는 머릿속에 각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같은 사건을 겪어도 어떤 사람은 “나는 다시 일어선 사람”이라고 기억하고, 다른 사람은 “나는 중요한 순간마다 무너지는 사람”이라고 정리합니다. 이처럼 실패를 어떤 이야기로 어떻게 묶어두느냐는 단순한 기억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의 선택과 관계, 삶 전체의 방향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실패에 대한 자기 서사 다시 쓰기는 단순히 과거를 좋게 포장하는 작업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나를 새롭게 구성하는 심리학적 훈련에 가깝습니다. 이 글에서는 내러티브라는 관점을 통해 실패 경험을 보는 방법을 바꾸고, 자아정체성과 연결된 나만의 이야기를 점검해 본 뒤, 결국 그 실패 서사를 회복의 이야기로 전환하는 과정을 차례대로 살펴보고,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적용해 볼 수 있는 질문과 실천 아이디어를 제안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 오직 나, 자아정체성을 나타내는 이미지

실패에 대한 자기 서사 다시 쓰기와 내러티브 이해

실패에 대한 자기 서사 다시 쓰기와 내러티브 이해라는 주제는 우리가 기억을 어떻게 배열하고 설명하는지부터 돌아보게 합니다. 내러티브란 단편적인 사건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의미 있는 이야기로 엮어 내는 방식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시험 낙방 경험을 두고 어떤 사람은 ‘그때 크게 좌절해서 결국 이 길을 포기했다’라는 이야기로 기억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그때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진로를 찾을 수 있었다’라고 정리합니다. 사건은 같지만, 내러티브가 다르기 때문에 그 이후의 삶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대개 실패 경험을 생각할 때, 결과만 떠올리고 그 사이에 있었던 시도와 배움, 주변의 도움, 감정의 변화 같은 요소를 잘 살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러티브 작업의 첫 단계는 실패와 관련된 순간들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적어 보는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 그때 했던 선택, 도움을 요청했던 사람, 작지만 나름 의미 있었던 행동들을 시간 순서대로 쭉 늘어놓다 보면, ‘완전히 무너진 실패’라고만 생각했던 사건 속에서도 그렇지 않았던 여러 갈래의 장면들이 보입니다. 그런 다음 ‘이 경험을 하나의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처음 떠오르는 문장은 대개 자기 비난 쪽에 치우쳐 있기 쉽지만, 거기에서 한 번 더 질문을 던져 ‘이 경험이 나에게 알려 준 것’에 초점을 맞추면 조금 더 다원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내러티브를 바꾼다는 것은 과거를 거짓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건 속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해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 구조로 다시 만드는 과정입니다.

자아정체성 관점에서 실패를 재구성하기

자아정체성 관점에서 실패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문장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장 과정에서 가족, 학교, 사회가 건네는 평가와 기대를 계속해서 흡수하면서 자신에 대한 핵심 문장을 만들어 갑니다. ‘나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다’, ‘나는 늘 끝까지 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주저앉는 사람이다’ 같은 문장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문제는 몇 번의 실패 경험이 이 핵심 문장을 과하게 왜곡시킬 때입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한 번 큰 실수를 한 뒤에 ‘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일을 망치는 타입이야’라고 자아정체성을 규정해 버리면, 이후 비슷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실제 행동도 그 믿음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기 서사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는 ‘실패한 나’라는 이미지가 자아정체성을 과도하게 자리잡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한 가지 방법은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문장을 여러 개 적어 보고, 그중 실패와 관련된 표현에 표시를 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각 문장에 대해 ‘정말 항상 그랬었나’, ‘이와는 다른 모습을 보였던 적는 없었나’를 떠올려 보면, 우리가 스스로를 얼마나 단편적으로 정의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아정체성은 하나의 라벨이 아니라 여러 측면이 함께 존재하는 입체적인 구조를 가집니다. 실패한 장면만 크게 확대해 놓은 채 자신을 바라보면, 실제보다 훨씬 작고 무가치한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그 시간 동안 해냈던 일들, 견뎌낸 과정, 지켜 온 관계들을 함께 떠올리면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됩니다. 실패를 재구성한다는 것은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굳은 결론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 주고, 내 안에 아직도 쓰지 못한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자아정체성을 다시 바라볼 때, 실패는 더 이상 나를 규정하는 낙인 같은 것이 아니라, 나라는 복잡한 사람을 설명하는 여러 장면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됩니다.

실패 서사를 회복의 이야기로 전환하기

실패 서사를 회복의 이야기로 전환하기는 과거의 상처를 지운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상처를 통과해 온 과정을 이야기 속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는 작업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실패를 떠올릴 때 시작과 끝만 기억합니다. 기대에 부풀었던 출발과, 실망스러운 결과만 크게 남겨 두고 그 사이에 있었던 수많은 노력과 작은 선택들은 흐릿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회복의 내러티브는 바로 이 사이 구간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졌다면, 단지 ‘떨어졌다’로 끝내지 않고, 준비 기간 동안 포기하고 싶었지만 다시 책을 펼치고 공부했던 날들, 불안했지만 도움을 요청했던 순간, 결과를 마주하고도 하루하루를 버텨 냈던 과정까지 함께 적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록하다 보면 실패의 이야기 속에도 이미 회복의 요소들이 들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는 그 이후의 선택을 현재 시점에서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때의 실패 때문에 돌아가게 된 다른 길,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들, 그 경험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면, 그것이 모두 회복 서사의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물론 모든 실패가 바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일은 여전히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아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의 내러티브를 쓰는 과정에서는 억지로 감사한 점을 찾기보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버텨 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현실적입니다. 스스로에게 ‘그때의 나에게 지금 한 문장을 건넨다면 무엇이라고 말해 주고 싶을까?’라고 질문해 보면, 과거의 나를 향한 연민과 격려가 떠오르면서 현재의 나까지 동시에 위로하게 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다시 짜 맞추다 보면, 실패는 나를 무너뜨린 사건이면서 동시에 여기까지 오도록 등을 밀어준 힘이었다는 양가적인 얼굴을 드러냅니다.

결국 실패에 대한 자기 서사 다시 쓰기는 과거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과거와 관계 맺는 방식을 바꾸는 작업입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그때 무너진 나’만 떠올릴 수도 있고, ‘그때 흔들렸지만 어쨌든 여기까지 온 나’의 모습을 함께 담아낼 수도 있습니다. 내러티브를 통해 실패 경험을 세밀하게 다시 바라보고, 자아정체성 관점에서 나를 규정해 온 문장을 점검하며, 실패 서사를 회복의 이야기로 전환하기 위한 질문들을 계속 던지다 보면, 서서히 내 마음속에서 나를 향한 태도가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실패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면, 언젠가부터는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며 ‘참 많이 버텼구나’라는 말이 먼저 나올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화려한 성공 이야기로 인생을 다시 쓸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밤 잠들기 전, 과거의 어떤 실패 장면을 한 가지 떠올려 그 안에 이미 존재했던 용기와 성장을 찾아 한두 문장이라도 적어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문장들이 쌓일수록, 내 삶을 설명하는 긴 이야기 속에서 실패의 자리는 점점 달라지고, 결국에는 나를 무너뜨린 장면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단단하게 만드는 장면으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